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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기타] <샤이닝>-스탠리 큐브릭(1980)

울리우스 2018. 7. 22. 15:50

 

오늘은 샤이닝이라는 영화에 대한 감상평을 남겨보려고 합니다.

 

샤이닝...맨 처음 들었을 때 가수 샤이니가 생각나서, 공포영화라는 장르와 잘 맞지 않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샤이닝은 학술용어인지는 모르지만 입을 열지 않고도 얘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극 중 아들 대니와 홀로랜역을 맡은 배우가 사용합니다. 흔히 우리들이 이야기하는 텔레파시 같은 초능력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 이영 화를 보기전에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영화이어서 촌스럽고, 영상화질이 안좋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1980년이면 지금부터 거의 30년 전 영화죠.

누구나 다 그런 생각을 할 겁니다.

 

하지만, 영화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버드아지즈뷰로 찍은 숲 속의 모습은 환상적입니다. 감독은 그 촬영을 위해 3개월을 기다렸다고 까지 합니다. 스탠리 큐브릭이라는 감독이 얼마나 완벽주의를 추구하는지 알만합니다.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등장하는 신디사이저 음악은 영화 전체를 지배합니다. 정말 무서운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저는 '샤이닝'이라는 영화의 공포의 팔 할은 음악이고, 나머지 이 할은 배우들의 표정연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영화 컨저링이 무서운 장면 없는 무서운 영화라는 캐치프레이징을 한 것은 영화 샤이닝에 더 알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그렇게 무서운 장면은 없습니다.

 

전체적인 영화의 스토리는 교편을 잡고 있던 아버지가 작가로 전업을 하면서 가족들이 호텔이 비어있는 동안 호텔관리인으로 일하면서 호텔에서 벌어지는 아버지의 광기를 보여주는 겁니다. 여기서 아버지는 약간의 히스테릭하고,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어머니는 의존적이고, 아버지를 따르는 가부장시대의 전형적인 어머니 상을 보여줍니다. 따로, 특별한 인물설명은 필요없는 캐릭터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많은 명장면을 보여주는 아들 대니가 있습니다. 대니는 이중인격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혀 아래 살고 있는 토니라는 제 2의 인물이 대니 내면에는 내재되어 있습니다. 토니는 대니와 대화를 나누며 대니의 초능력이 대니 것이 아니라 토니의 능력이라는 흐름으로 초능력의 자기 분열적 타자화를 보여줍니다. 대니는 토니와의 대화를 통해서 호텔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압니다. 그 공포스러운 이미지가 대니의 눈 앞에는 보이는 것이지요.

아! 호텔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은 호텔관리인으로 있던 과거의 관리인이 자신의 두 딸과 엄마를 도끼로 토막살해하고, 자신은 총을 입 안에 넣어 자살한 사건입니다. 신문에 보도될 정도로 심한 사건이었죠.

아버지는 이 사건을 호텔매니저, 사장(?)에게 듣습니다. 하지만, 거의 동요하지 않죠. 약간의 표정 변화만 보여줄 뿐 그 다지 동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를 통해 아버지가 그 과거의 살인마 역할을 재연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실제로 영화에서 아버지는 도끼를 통해 가족들을 살해하려고 합니다.

물론, 결론은 가족들 중 아버지만 죽은 채 다른 가족들은 살아남아 도망칩니다.

결과적으로는 해피엔딩인거죠.

 

영화에서 몇 가지 주목할 만한 건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불편함입니다.

아버지는 매우 가부장적입니다. 자신이 타자기를 통해 작가의 본업을 하고 있을 때 자신의 아내에게 조차 방해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것도 타자기 소리가 들으면 자연스럽게 방에 들어오지 말라는 방식으로 말합니다. 이 보다 더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사실 보기 힘들죠

아들에게 서스름없이 괴기스러운 '식인'이야기라든가 아들의 팔을 어릴 적 탈골 시킨다는 가 하는 전형적인 아버지입니다. 아마도 감독은 이런 아버지 아래에서 자랐거나, 1970~80년대 미국의 가정모습을 비유한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그런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결국 살인마다 이게 감독이 말하고 싶은 바가 아닌가 합니다. 물론, 제가 해석한 감독의 메시지가 조금 과다할 정도로 심하긴 합니다. 하지만, 가부장적인 미국사회에서 가부장적 아버지들은 그러한 역할을 하게 될 또는 된 것이라고 감독은 말하는 것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아버지의 모습은 제게 불편했습니다.

특히, 아들이 아버지가 휴식을 취할 때 소방차를 가지러 방에 들어갔는데 아버지는 자고 있지 않죠. 그저 멍하니, 침대에 앉아있었습니다. 언제든 아들을 죽일 수 있는 상황인거죠. 아들은 아버지의 부름에 품에 안깁니다. 그들의 표정이 압권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아닙니다. 여기서 아들은 물어봅니다 "엄마하고 저 해칠 건가요?" 아들의 표정도 아무 감정변화 없죠. 아마도, 아버지가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아들은 토니를 통해 알고 있었던 거죠. 그들의 대화에서 저는 조마조마했습니다. 순간적으로 아버지가 죽일 수 있다는 관객의 생각을 감독이 의도한거죠. 마치, 관객의 머리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습니다.

 

두 번째 저는 개인적으로 첫번째와 연결되지만, 어머니 상이 안타까웠습니다. 어머니는 아무것도 하지못합니다. 물론, 아들을 살려내고, 마지막에 스노우캣을 운전하면서 탈출을 합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어머니는 수동적인 상을 보여주고, 무력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표정도 울상이 표정이 많죠. 전혀 행복하지 않은 모습입니다. 아마도 그 시대의 어머니들은 그랬을까요? 저는 제가 던진 물음에서 그 시대를 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어머니도 비슷한 모습을 보일 것입니다. 최근 대한민국에는 강남역 살인사건이 있습니다. 여성혐오증이라는 것이 대두가 되었죠. 아직도 우리는 길을 가면서 여자들에게 점수를 매깁니다. 아직도 많은 여자들이 남성성에 희생당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여기서 남자가 아니라 남성성이라고 했죠. 많은 여성분들이 증오해야하는 것은 남자가 아니라 남성성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무기력한 어머니는 우는 모습으로 영화 내내 겁에 질려 있습니다. 영화 포스터의 모습은 여기서 나옵니다. 아버지가 도끼로 화장실 문을 무시고 얼굴을 내밀죠. 영화의 명장면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의 열연도 대단하다고 생각됩니다. 어떤 공포영화보다 무서운 장면이었습니다. 단순히 표정으로 사람을 겁에 질리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적절하게 보여주는 것이죠.

 

세 번째, 저도 놓친 부분인데, 인디언들의 희생에 대해 감독이 애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영화를 보면 인디언의 장식품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영화의 배경인 호텔도 인디언의 땅에서 희생이 치러지면서 지어졌다고 하죠. 아마도 감독은 인디언, 물론 정식 명칭은 네이티브 아메리칸으로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지만, 편의를 위해 인디언이라고 하겠습니다. 서부개척시대 미국인들은 많은 인디언들을 학살했습니다. 아니,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이라고 칭하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면서 그들은 원주민을 학살했습니다. 그들에게 원주민들은 하나의 동물에 불과했죠. 이러한 야만주의를 감독을 비판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요소들을 알고 영화를 감상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명장면이라고 생각되는 미로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추격전은 정말 쫄깃쫄깃합니다. 저는 보면서 미로는 도망자와 추격자 중에 누구에게 유리한 구조일까 생각했습니다. 아마, 영화에서 아들은 살아남았지만, 제가 미로의 구조를 모르는 도망자라면 절대 미로로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일단, 미로에 들어가면 희생당할 가능성이 크죠.

 

이 영화는 짜임새가 있지 않습니다. 일단, 소설을 기반으로 만든 영화라고 하는데 중간중간 이해되지 않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 것을 모두 설명하기에는 영화 시간구조상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부분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시는게 나을 것입니다. 영화를 즐길 포인트는 음악과 배우들의 표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