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생각

[23.07.14] 최악의 하루

울리우스 2023. 7. 15. 23:47

오늘은 예비군 훈련을 가는 날이다. 2018년에 제대한 나는 올해로 5년차 예비군이다. 그것은 아직 1년이 더 남았다는 것...나이가 30대 후반인데, 이제는 조금 힘든 느낌? 하지만, 그것은 나이+운동 안 함+살찜이 겹친 것이겠지? 사실 오늘은 나의 최악의 하루를 기록하려고 한 것인데 몇 스푼의 경험들이 있겠지만, 예비군 때문은 아니다.

예비군 훈련

새벽부터 일어나 배정받은 예비군을 갈 준비를 한다. 자차가 없는 나는 버스와 지하철은 2~3번 정도 갈아탄 뒤 1시간 30분 걸려 훈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비는 가랑비처럼 내리고, 오랜만에 입은 군복은 맞지도 않고...힘이 들었다. 시간을 이렇게 날리다니 너무 힘들다.

하지만, 오늘은 그것 때문에 최악의 하루는 아니었다. 예비군은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

첫번째, 스푼

예비군을 갈 때 나는 꼭 px를 들른다. 오늘은 조금 과했는지, 화장품을 엄청 샀다. 주변 지인에게 주려고 한 것인데, (가족들이나) 너무 많이 샀다. px에서 산 쇼핑백을 넘쳐 흘러 메고 간 가방에까지 꽉 찼다. 비가 와서 힘들지 않았지만, 비로 인한 습기로 얼굴에는 땀인지 물인지 알 수 없느 액체가 흐르고 있었고, 우산에, 쇼핑백에, 무거운 가방에 젖은 머리, 젖은 얼굴은 짜증을 유발하기에 충분한 조건이었다. 저벅저벅 버스를 타러 내려간다. 하지만, 오늘의 짜증은 시작에 불과했다.

훈련보상비
px 화장품

두번째, 스푼

버스에 탔다. 강남역에 도착하는 시간은 대략 40분정도 걸린다. 이제 편안하게 앉아서 가야지 하는 생각에 핸드폰을 보며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지, (오늘은 인세가 들어왔다^^) 고민했다. 나름대로 나에게 주는 합리화된 저녁 만찬을 생각했다. 그러던 중 한 전화가 왔다. 내가 소소하게 투자한 건물에 임차인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전화 내용은 비가오는데 창틀에서 물이 샌다는 것..."어떻게 해야하지?" 이리저리 전화를 돌려보고, 관리사무소에 전화한 끝에 그것이 건물 외벽의 문제였다는 것. 하...시공사에 전화를 하고, 요청을 해야 하는데...이래서 투자는 신중하게 해야 하는 것. 지은 지 3년도 채 안 된 건물에 물이 새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슬슬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세번째, 스푼

한껏 짜증이 난 상태에서 나는 강남역에 내리려고 준비를 했다. 옆에 앉아있는 사람한테 내린다는 신호(일종의 짐을 챙기는 제스처)를 주고, 한 손에 우산, 한 손에 가득찬 화장품 쇼핑백, 화장품으로 가득찬 백팩을 챙겼다.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은 제스처를 알아채고, 복도로 다리를 옮긴다. 알아서 지나가라는 뜻이였고, 사람이 가득찬 강남역 버스에서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우산, 쇼핑백, 백팩은 그 공간을 지나가기에 부족했고, 그 사람도 그것을 알았는지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는 죄송하다는 말을 건냈지만, 그 사람은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친절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인듯 보였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백팩의 지퍼가 조금 열려있었는지 크림류의 네모난 상자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제 3자의 눈에서 이 자리를 보자. 땀인지 물인지 범벅된 머리, 양손 가득히 물건을 들고 있어 손이 없던 사람, 조금 전 통화를 마치고 잠깐 짜증난 듯한 얼굴을 한 한 남성.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장돌뱅이마냥 크림류의 상자들이 사람 가득한 버스에서 떨어져서 주섬주섬 황급히 줍고 있는 남성. 그게 바로 나였다. 

이렇게 나는 강남역에서 내려서 지하철을 타고, 우리 동네로 돌아왔다. 버스에서 내일 때 우산이 앞자석에 낀걸 모르고, 잡아당기면서 우산의 앞코(?)가 부러졌고, 양손 가득한 물건. 볼록한 백팩, 산발이 된 머리. 그게 우리 동네에서 나의 모습이었고, 예비군 훈련으로 고생했다고, 9시 - 18시까지 보상비로 8000원을 보고 있는 나...최악의 하루였다.

 

집에 돌아와 내가 짜증이 난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먼저, 예비군 훈련. 우리는 일상 속에서 국가가 나를 강제한다는 생각을 잘 하지 못한다. 하지만, 군대를 다녀온지 얼마되지 않은 사람들은 예비군 훈련 때 나의 자유 대신 국가에 대한 충성과 의무라는 것이 현시화된 훈련이라는 것을 받는다. 그 보상으로 8,000원을 받는다. 내가 그 사이에 글을 쓰고, 강의를 하고 그랬다면 적어도 1시간당 1,000원 이상의 돈을 벌었을 텐데...하루의 시간이 이렇게 소진되어버리다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 임대 건물의 문제. 시공사의 문제로 외벽의 틈이 갈라야 창문 사이로 물이 새는 문제. 그 문제를 직접 고치기 위해서 관리사무소에 비용을 지불하고, 임차인이 편하게 살 수 있도록 하려고 했는데, 돈이 든다는 것. 그것도 아주 많은 돈이 다음주에 시공사에 연락을 해 봐야 알겠지만, 결국 돈 문제가 아닌가? 일단 그전에 돈이 충분했다면 나는 그 건물을 사지도 않았을텐데...

세번째, 우수수 떨어지는 화장품. 나는 필사적으로 px에 두번이나 들러 화장품을 샀다. px 물품이 사다는 나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고, 예비군 훈련의 유일한 혜택이라고 생각했는지 평소라면 소비하지 않던 나의 소비패턴. 결국 돈이 없어서가 아닌가?

네번째, 우산의 코가 부러진 것. 사실 그 우산은 전날 하필이면 쿠팡에서 샀던 좋은 우산을 잃어버리고, 예비군 훈련을 가기위해 급한대로 편의점에서 이왕이면 좋은 우산을 사자 하고, 나름 돈을 들여 산 물건이었다. 그런데 부러졌다.

최악의 하루가 된 날 나의 짜증은 어디에서부터 왔을까? 돈을 벌지 못했다는 것, 돈이 들어간다는 것, 돈을 아끼려고 비합리적 소비를 했다는 것, 새로 돈을 들여 물건을 샀는데 오래가지 않았다는 것...

"돈이었다"

나는 가끔 이런류의 결론을 내지 않으려고 한다. 무언가 돈이라고 한다면 천박해보이고, 욕심쟁이가 같아보이지만, 익명으로 된 이 블로그는 솔직한 나의 생각을 드러내려고 만든 것이라(물론 완벽한 솔직함은 없다), 이런 결론이 났다. 이왕이면 조금 더 고뇌하고, 가치스럽고, 올바른 방향의 사색을 하려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는 "돈"이었다. 

오늘 하루의 느낀점: 욕심부리지 말고, 돈에 속박되지 말고, 적당히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