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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벌초]풀은 무슨 죄가 있는가?
    생각/생각 2018. 9. 9. 20:27

    벌초(罰草)

    罰: 벌하다 벌

    草: 풀 초

    풀은 무슨 죄가 있는가?


      우리 민족은 1년에 큰 명절이 두 번있습니다. 하나는 설날이고, 다른 하나는 추석입니다. 아마도 설날은 새해를 기념하는 명절일 것이고, 추석은 가을 추수의 풍요로움을 만끽하는 것에서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오늘은 추석 명절 전의 조상의 묘의 풀을 깎는 행사인 '벌초'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추석 전에 집안 어른들은 추석 2주전쯤에는 선산에 모두 모여 아무리 봐도 안전해보이지가 않는 예초기를 들고 풀을 잘라내는 행사를 했습니다. 그 행사시즌에 뉴스에 항상 나오는 기삿거리는 벌초하다가 벌에 쏘여 다치거나 죽은 아저씨들 이야기였습니다. 어릴 때 벌초는 저는 가서 구경하고, 벌초가 끝나면 할아버지께 절을 하고 돌아오곤 했습니다. 어릴 적을 돌이켜보면 예초기의 날카로운 칼날에 발목이 잘리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나이가 점점 들어 저도 이제 벌초행사에 빠지면 안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시간되는 친척들끼리 벌초를 하며 근황을 물어보지만 매년 질문은 똑같습니다. 똑같은 질문을 뒤로 한 채 예초기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웽'하는 소리와 함께 칼날이 풀들을 잘라내기 시작합니다. 예초기를 돌리지 않는 사람은 꽃이건 풀이건 뿌리채 뽑아냅니다. 그 중에서는 제가 알고 있는 달맞이꽃, 닭의 장풀과 같은 이쁜 꽃들도 있습니다.

      한창 예초기가 돌아가고 쉴 때쯤 대롱대롱 뿌리를 조금이라도 땅에 붙이려는 닭의 장풀이 보였습니다. 예초기 소리에 놀라 풀 속에서 튀어나오는 이름 모를 벌레들이 보였습니다. 벌레들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들이 도대체 뭐라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득 '벌초'의 뜻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에 잠겨 찾아봤습니다. '벌'은 罰이라는 한자를 사용하는 데 '벌하다'라는 뜻입니다. '초'는 다들 아시다시피 '풀'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벌초'는 단어 그대로 해석하면 '풀을 벌하다'라는 뜻이 될 것입니다. 

      '벌하다'라는 행위를 살펴보면 여러가지 재미있는 것들이 생각납니다. 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저는 '벌'이라는 단어에 상당히 익숙합니다. 물론 벌을 당하는 쪽보다는 벌을 주는 쪽이겠죠? (교사로서 가장 어려운 일이 벌을 주는 것 같습니다만) 학교에서 종종 아이들에게 벌을 줄 때는 무슨 잘못을 했을 때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은 숙제를 안하거나, 싸우거나 하는 문제들입니다. 그렇다면 풀은 어떤 잘못을 했길래 1년에 1번씩 죽음에 이르는 벌을 받는 걸까?라는 생각이 제 머리 속을 가득 메웁니다.

      풀의 죄는 무엇일까? 이것이 오늘 글을 제 핵심 질문입니다. 계속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다가 답이 떠오르지 않자, 이것부터 떠오릅니다. 벌초를 한 후에 만족스러운 얼굴로 산소에 뿌리다 만 술을 드시는 어른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깔끔하네!' 실로 무서운 말입니다. 무슨 오버랩되는 것은 어느 살인 영화에서 싸이코패스가 편집증적인 살인을 한 후에 예술 작품을 만들어가는 느낌으로 '깔끔하네!'가 들렸습니다. '깔끔하다' 아마 인간의 눈에 보기에 그럴 것입니다. 이미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는 이 깔끔한 것은 아실까? 저는 아직 죽기 전이라 사후 세계는 모릅니다. '돌아가다'라는 말이 인간이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어쩌면 벌초는 '돌아가다'라는 말을 방해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한 살아있는 사람들만의 인간중심적인 사고 아닐까요?

      풀은 죄가 없습니다. 다만 죄가 있다면 조상들의 산소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 존재론적 죄가 있긴 하지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론과 유사하게 느껴집니다. 모든 풀은 태어나면서 죄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물론, 산소에서 안 태어난 풀은 조금 오래 살겠지만, 산소에서 태어난 태생적인 문제는 그들의 수명을 1년으로 제한시킵니다. 1년동안 어쩌면 좋은 향기를 산소에 주었을 수도 있고, 1년동안 어쩌면 비가 와도 흙이 쓸려 내려가지 않도록 뿌리도 흙을 잡아주었을 지도 모릅니다. 이런 풀들은 우리는 벌을 하고 있는 거지요.

      제 생각이 지나치게 '자연주의'적이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그렇다면 조금더 친생물적으로 확장해볼까요? 벌에 쏘여 다치거나 사망하는 어른들은 벌의 보금자리를 방해한 것입니다. 예초기 칼날에 몸통이 잘려 툭툭 튀어나오는 벌레들은 잘 살고 있는 보금자리를 뺏긴 것입니다. 이것이 재개발 지역의 주민들이 보금자리를 뺏긴 것과 큰차이가 있을까요? 모두 효율성과 깔끔함을 위해 하는 행동들입니다. 이번에는 조금 더 현실적으로 가볼까요? 벌초를 하면서 버려지는 쓰레기들은 어떻게 되나요? 산을 더럽히는 것을 조상님들은 좋아하실까요?

      저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벌초를 싫어하고,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닙니다. 벌초할 때 한 번 생각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저는 벌초라는 우리나라 문화가 있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한 번쯤은 다른 방법을 적어도 풀꽃은 살려둘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보자는 것입니다. 얼마나 가슴 아픈 가요? 태어나는 것 자체가 죄인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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